‘삼성이 팔릴까’ 삼성이 미국 기업이 될까? 공포 뒤에 있는 진짜 이야기

2025. 9. 3. 01:35etc/column

‘삼성이 팔릴까’ 공포 뒤에 있는 진짜 이야기

인텔 10% ‘정부주주’의 충격, EMIB-T로 옮겨붙은 기술 전선, 한국의 다음 수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9.9%를 가져가면서 반도체 권력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보조금을 주주권으로 바꾼 이 거래는, 기업 간 경쟁에 정부가 직접 이해관계자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같은 시각 한국에선 “이제 삼성전자 차례”라는 소문이 돌았고, 대통령실은 “사실무근”이라 일축했다. 과장이 덧칠된 공포와, 실제로 진행 중인 규칙 바꾸기가 한 프레임 안에서 겹쳐진다.

 

‘정부가 주주가 된 날’ 이후

8월 22일, 인텔은 미 정부가 89억 달러를 보통주로 투자해 9.9% 지분을 보유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 지분 매입이 433.3만 주(주당 약 20.47달러)로 집행되며, 미측이 과거 CHIPS 재원을 지분형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주일 만에 조기 지급·조건 변경 정정 보도도 잇따랐다. 무엇을 의미하나? 한마디로 말해, ‘현금보조금 시대’가 ‘정부주주 시대’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신호다.

정치적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공화당 일각에선 “사회주의 같아 보인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백악관은 “국가안보를 위한 전략적 지분”이라고 맞섰다. 자유시장 원칙을 훼손한다는 스콧 린시컴의 칼럼은 워싱턴포스트에 실렸고, AP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많은 딜이 온다”고 예고했다고 전했다. 시장은 이렇게 읽었다. 미국은 반도체에서만큼은 규칙을 바꾸고 있다.

 

“삼성도?”—소문과 팩트의 경계

그 불길은 곧 서울로 번졌다. “미국이 삼성전자 지분을 노린다”는 보도가 쏟아졌고, 대통령실은 “그런 계획 없다”며 선을 그었다. KBS·중앙일보 등도 ‘지분설 부인’을 보도했다.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CHIPS 인센티브를 지분과 연계하려는 미 정부의 방향성은 분명해졌고, 삼성의 미국 내 보조금(최대 47.45억 달러)이 이미 확정된 상태라는 점에서, 정책 레버리지가 交涉(교섭) 카드로 쓰일 여지는 남는다.

숫자도 정확히 보자. 2024년 12월 상무부는 삼성 테일러 단지에 직접지원 47.45억 달러를 최종 고시했다(4월 ‘최대 64억 달러’ 예비합의에서 조정됨). 이 금액을 임의로 ‘지분 환산’하는 건 정책·거버넌스 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현재로선 추정의 영역이다.

 

전장은 ‘미세공정’이 아니라 ‘패키징’

이번 판바꿈의 핵심은 기술이다. 인텔이 ECTC 2025에서 공개한 EMIB-T는 기존 EMIB에 TSV 전력·신호 관통을 더해 HBM4·UCIe 대역폭을 끌어올리는 차세대 패키징이다. 논문과 발표자료엔 최대 120×180mm 대형 패키지, 피치 45→35/25µm 로드맵, 유리 서브스트레이트 호환 같은 디테일이 나온다. 칩렛 인터커넥트 표준인 UCIe 3.0은 올해 8월 48/64 GT/s로 상향됐다. 패키징+표준 결합은 사실상의 플랫폼 락인이 된다.

반대편에선 TSMC가 CoWoS 캐파를 2025년 월 7만5천장 수준으로 연속 두 해 ‘더블’을 외치며 병목 완화를 시도 중이다. 그 사이, 한국의 무기는 HBM이다. SK하이닉스는 12-단 HBM4 샘플 출하 2025년 하반기 양산 준비를 공식화했다. 인텔이 EMIB-T로 패키징 전장을 넓히는 사이, HBM4 표준 세대로 건너가는 타이밍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 닥친 ‘보이지 않는 지분’

지분을 직접 넘기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지분은 이미 존재한다. 보조금 조건·수출통제·조달 규칙이 그것이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 딜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파운드리 지배력 유지(분리 억제)다. 같은 논리가 적용되면,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우시·시안) 운영과 설비 업그레이드에는 더 촘촘한 규제가 따라붙을 수 있다. 주주가 아니어도, 영향력은 행사된다.

 

우리가 지금 할 일

  1. 거버넌스 레드라인을 분명히 하라. 어떤 형태의 정부지분도 의결권·정보권 개입 불가를 원칙으로, 배당·환매·락업 등 시장규율 장치를 사전에 명문화해야 한다.
  2. 패키징-칩렛 동맹으로 판을 바꿔라. UCIe 3.0 적합성을 전제로, HBM4+AI 로직 미국-한국 이원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유리 기판·하이브리드 본딩 같은 차세대 공정까지 설계-패키징 동시개발을 걸어야 한다.
  3. 중국 리스크의 포트폴리오화—성능세대 분리와 비미국 장비 대체 가능 구간을 확보해 제재 변동성을 흡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론 | ‘삼성이 팔릴까’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

“삼성이 곧 팔린다”는 말은 유투버들의 제목 장사일 뿐이다. 그러나 룰이 바뀐 것만큼은 사실이다. 정부가 주주가 되는 시대, 승부처는 HBM4-UCIe-첨단 패키징 3종 세트다. 한국의 길은 명확하다. 지배구조 주권을 지키면서, 표준과 패키징에서 먼저 움직이는 것. 위기는 언제나 속도 디테일의 편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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