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 10:04ㆍetc/column
대한민국 아파트, 콘크리트 그리고 인구구조: 지속가능성의 경고음
서론: 회색 숲에 깃든 불안
서울의 하늘을 내려다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 숲이 보인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아파트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은 아파트로 꿈을 짓고, 재산을 불리고, 노후를 담보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안정이라는 이름의 작은 안도감을 샀다. 그러나 그 회색 숲은 이제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콘크리트의 무거운 숨결, 줄어드는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ESG라는 시대의 새로운 잣대가 한꺼번에 우리 어깨를 짓누른다.
본론①: 콘크리트, 플라스틱보다 무거운 그림자
아파트를 떠받치는 기둥은 단단하다. 하지만 그 기둥을 만든 콘크리트는 지구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시멘트 산업은 전 세계 탄소배출의 7~8%를 차지한다(IPCC, 2021). 시멘트 1톤을 만들 때마다 0.9톤의 이산화탄소가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플라스틱 산업 전체의 연간 배출량을 4억 톤으로 추산하지만, 시멘트는 22억 톤이 넘는다. 우리가 흔히 환경의 적으로 지목하는 플라스틱보다도 다섯 배나 무거운 그림자가 콘크리트에서 드리워진다.
카본큐어(CarbonCure) 같은 기술이 등장해 콘크리트 속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Monkman & Shao, 2010). 하지만 한국의 건설 현장에 이런 기술이 보편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의 재건축 열풍은 오히려 콘크리트의 그림자를 더 짙게 드리워왔다.
본론②: 인구구조의 균열, 채워지지 않는 집
통계청이 내놓은 숫자는 냉정하다. 합계출산율 0.72명, 세계 최저. 2025년이면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 한때는 청약 당첨 소식이 인생의 경사였지만, 지금은 지방 곳곳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간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 3천 호에 이른다.
아이 없는 사회, 노년이 많은 사회. 대형 아파트 단지는 점점 비어가고, 1~2인 가구가 살 소형 주거만 남게 된다. 우리는 아파트 숲을 세웠지만, 정작 그 숲을 채울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본론③: 안도 다다오 열풍, 그리고 한국의 현실
1990~2000년대, 한국 건축계에는 안도 다다오라는 이름이 바람처럼 불었다. 노출 콘크리트의 간결함과 고요한 미학은 건축학도들의 스케치북을 채웠고, 도시 곳곳에 작은 카페와 주택으로 번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현실은 달랐다. 장마철 습기와 겨울의 한파는 노출 콘크리트 벽에 곰팡이와 균열을 남겼다(대한건축학회, 2012). 아름다움은 유지비라는 비용과 맞바꿔야 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아파트와 닮아 있다. 한때는 효율성과 자산가치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인구구조와 환경 위기에 가장 취약한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건축은 결국 시간 앞에서 진실을 드러낸다.
본론④: ESG와 국제의 시선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유럽연합은 건물 에너지효율 인증을 의무화했고, 일본은 목조와 제로에너지 주택을 확대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카본큐어 같은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라는 단일한 선택지에 갇혀 있다. ESG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는 국제 자본이 한국 부동산을 평가 절하할 수 있는 리스크로 이어진다.
결론: 전환의 시간
아파트, 콘크리트, 인구구조, ESG. 이 네 단어가 한국 사회를 향해 동시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경고는 곧 기회다. 정부는 규제 완화보다 친환경 모듈러 주택과 목조 건축을 장려해야 한다. 기업은 탄소 저감 기술을 산업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개인은 아파트 투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회색 숲은 여전히 거대하다. 하지만 그 숲을 다른 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제는 콘크리트의 무거운 그림자를 넘어, 지속가능한 주거의 빛을 찾아야 한다.
'etc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아파트의 현재와 미래 — 꿈의 타워에서 생활의 플랫폼으로 (0) | 2025.09.01 |
---|---|
저탄소·재활용 콘크리트로 바뀌는 건설, 카본큐어 외 (0) | 2025.08.24 |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위한 범용 비침습적(상처를 내지않고) 신경운동 인터페이스 (0) | 2025.07.31 |